무려 미스터리, 공포, 스릴러로 분류되는 96분짜리 영화를 보다 보면 어째 그다지 미스터리하지도 공포스럽지도 또 스릴러스럽지도 않아 2% 부족하다고 느껴지지만 주인공 트리를 연기한 제시카 로테의 연기는 나름 괜춘하다. 제시카 로테의 연기가 이 영화의 전부였다고 할 정도로 그녀 연기가 별로였다면 시작에서 결말로 jump 해버렸을 것이다.
덥고 지루해서 영화 한편 보고 싶지만 공포영화는 절대 못 보겠다는 분들께 공포영화 못 보는 1인으로서 한마디 하자면, 충분한 서늘함을 느끼면서 볼 수 있는 정도의 공포니 망설이지 말고 보시길 추천한다.
생각보다 재밌는 부분이 분명 하나쯤은 있으니 심장이 계속 'Bounce ~ Bounce ~'하지만은 않는 영화다.
이후의 내용은 개인적인 견해는 물론 스포일러가 무조건 포함이 되는 바 부디 결말만 알고 싶다는 분, 결말을 알고 난에 후 보고 싶다는 분들만 열어보시길 부탁드린다.
시계탑 종소리로 시작되는 영화의 첫 장면, 낯선 방을 스치듯 인식하는 여자, 오늘을 알리는 생일송 벨소리와 Dad의 부재중 전화 알림. 모든 것이 배경으로만 지나가는 몇 장면이 지나고 여자의 이름 ‘트리’를 부르며 등장하는 싹수의 표본처럼 보이는 다니엘. 여학생 클럽의 회장쯤으로 보이는 이 여자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 닉 심스는 트리에게만 관심을 보인다.
직접 컵케이크를 만들어 생일까지 챙겨주는 섬세한 모습을 보이는 룸메이트 로리는 까칠한 성격의 트리를 친절하게 대한다. 면허증으로 생일까지 알아내 챙기는 자상한 로리를 트리는 오히려 비웃듯 과장된 얼굴로 촛불을 끄며 컵케이크까지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럼에도 로리는 병원에서 마주친 트리에게 오히려 넌지시 걱정의 말을 건넨다.
‘왜 왔는지 알 것 같네.’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이러다 너 나중에 크게 후회해.’
친절한 미소와 함께 '의미심장함'을 꾹꾹 눌러 담은 말을 트리는 가볍게 무시한다.
수업 중 묘한 눈빛을 주고받던 교수 그레고리와 트리는 불륜 중이다. 어쩐지 소극적으로 트리를 대하는 그레고리와 달리 그녀는 적극적으로 교수를 유혹한다. 그러나 죽음이 반복될수록 트리는 그레고리 교수를 외면하고, 오히려 그레고리는 점점 적극적으로 그녀를 유혹한다.
‘사랑에 빠져선 안 돼.’라며 트리에게 선을 긋던 그레고리는 ‘사랑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트리에게 ‘심쿵’ 하게 된다. 아마 ‘사랑’은 필요 없지만 ‘유혹’은 완전 좋은 불륜남 그레고리에게 트리가 완벽한 상대임을 보여준 장면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막 타오를 순간 타이밍도 좋게 그레고리의 부인이 나타난다. 마치 그레고리와 트리의 관계에 강한 선을 긋기라도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처음 인지하기 시작한 두 번째 오늘, 트리는 커트의 이름을 맞추고 타이레놀의 위치를 알려주는 자신에게 이상함을 느낀다. 마치 그런 그녀의 기분에 확신을 심어주듯 커트는 ‘너 꼭 와본 것 같다?’ 쐐기를 박는다.
익숙함을 그저 기시감으로만 치부하며 무시하려는 트리의 앞에 떡하니 놓인 뮤직 박스는 그녀가 다른 길을 선택하게 만든다. 터널을 지났던 어제와 다르게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트리는 도착한 기숙사에서 과잉반응을 보이지만 마치 그걸로 모든 게 끝이 나는 것처럼 상황은 어제와 다르게 펼쳐지고 만다.
비명과 함께 시작한 세 번째, 이번에는 일어나는 순간부터 완벽하게 ‘이상하다’고 인지한 트리는 그제야 흘려보냈던 모든 것들을 피부 깊숙이 인식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이제야 현실로 존재하는 것처럼. 그길로 달려간 것은 자신의 기숙사 방이다. 그곳에서 트리는 룸메이트인 로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생일을 더욱 극대화하는 것은 틈틈이 등장하는 트리의 엄마다. 두 번째 죽음에서 트리가 보던 엄마와 함께 찍은 동영상, 세 번째 죽음에 앞서 엎어진 액자 속에 들어있는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 ‘우리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노랫소리와 3년 전 떠나버린 그녀의 죽음까지.
‘왜? 하필? 꼭? '생일' 이어야만 했을까’라는 의문을 해결해주는 그녀의 등장은 그녀가 겪는 죽여도 죽지 않는 ‘오늘’ 혹은 가질 수 없는 ‘내일’에 대한 이유가 되어준다. 먼저 떠나버린 엄마가 죽음을 앞에 둔 딸을 구하기 위한 고군분투일지도 모를 반복된 오늘 속에서 트리는 조금씩 변해간다. 엄마가 떠나버리고 이기적이고 못된 자신을 점점 마주하면서 자신이 그동안 나쁜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딱 보기에도 범생이로 보이는 커트는 트리가 반복되는 ‘오늘’을 헤쳐나갈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응원을 보내는 인물이다.
트리를 걱정하는 마음에 자신의 기숙사 방으로 데리고 온 순간부터 자꾸만 잊어버리고 가는 그녀의 소중한 팔찌를 매번 잊지 않고 가져다주는 커트는 트리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엄마가 좋아하지 않을 모습이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실망한 그녀, 트리에게 한 걸음 나아갈 힘을 준 것처럼, 엄마의 죽음 이후 지워버리고 싶기만 한 ‘오늘’에 의미를 부여하고 피하고만 싶은 ‘생일’에 용기를 준다.
흑심이 전부였던 그동안의 많은 남자들과 달리 이상해진 자신마저 받아들이며 존중해주는 커트에게 그만 심쿵해 버린 트리는 그의 조언을 실행에 옮긴다.
‘어차피 죽지 않잖아. 그냥 스스로 살인사건을 해결해’
단순하지만 다소 무식한 방법에 황당한 얼굴이 돼버리지만 별다른 고민도 하지 않고 커트의 말대로 트리는 매 죽음을 통해 용의자를 줄여나간다.
‘네 아이디어 완전 별로’라는 짜증이 터져 나올 때까지 죽고 죽고 또 죽던 ‘오늘’에 드디어 화를 폭발시킨 트리는 폭발한 분노를 어쩌기도 전에 쓰러져 버린다. 병원에서 의식을 차린 그녀는 드디어 죽음에서 벗어나는 듯 보이지만 화염과 함께 기어이 아침을 맞이하고 만다.
여전히 똑같은 아침 트리는 막장의 끝을 보여주려는 듯 커트에게 까칠의 끝을 보여준다. ‘오늘은 네 남은 인생의 첫날이다.’라는 문구에 ‘진짜 짜증나 이놈의 스티커’라는 말과 함께 기숙사를 뛰쳐나가버린다. 자신을 쫓아온 커트에게 조금씩 마음을 드러내며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지한 순간, 트리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용의자를 발견한다.
드디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에 병원으로 향해 내일을 위한 사투를 벌이지만 그 뒤를 따라온 커트로 인해 트리는 스스로 ‘오늘’을 선택하고야 만다. 자기만이 전부였던 이기적인 트리가 타인인 커트를 위해 스스로 ‘오늘’을 택한 것에서 이미 그녀가 처음 우리들이 만난 트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을 흘려보냈던 처음과 다르게 트리는 커트에게 기쁨의 포옹을 하고 커트의 친구에게 장난스러운 인사를 건네며 무시하기만 하던 기숙사 친구에게 인사까지 건네는 경쾌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시하고 못되게 굴었던 로리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불륜 중이었던 그레고리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모습까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 트리는 드디어 피하기만 했던 Dad를 만나러 간다.
늘 엄마와 함께여서 두 배로 더 행복했던 생일, 3년 전 끔찍한 날로 바뀐 뒤로 계속 피했던 순간을 당당히 마주한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들고 슬프지만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며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고백한 트리의 손을 말없이 잡아주는 Dad. 이제야 겨우 트리는 피하고 숨어서 불행했던 ‘생일’을 겨우 끝내버린다.
드디어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 트리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자신을 죽일 것이 확실한 용의자에게 향한다.
확실히 살아남은 트리는 컵케이크에 촛불을 붙이고 ‘내일’을 소원으로 빌며 불을 끈다. 그렇게 모든 것이 Happy Ending이 되는 것만 같던 순간, 종소리와 함께 뜬 눈에 어제가 되었어야 할 날이 똑같이 시작된다.
매번 경건하게 들리는 시계탑 소리로 시작된 오늘, 트리의 눈에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있다. 달라진 자신이 마치 지워진 것처럼 오늘 또 죽어야 할 운명에 지친 것처럼 트리는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떠나기를 선택한다.
기숙사로 달려와 짐을 챙기는 트리에게 로리는 다소 다급한 듯 초를 꽂은 컵케이크에 불을 붙이며 다가온다
.
‘생일 축하해’
‘고맙지만 그거 어젯밤에도 먹었어.’
툭 내뱉은 말에 번쩍하고 정신이 든 트리는 정답을 맞힌 것처럼 한마디 한다.
‘난 자다가 죽은 거야.’
그 뒤로 퍼즐을 맞춰나가는 트리는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간다. 아주 티 나게 부정하는 로리에게 불을 끄며 컵케이크를 내미는데 로리는 더 참지 못하고 머리끄덩이를 잡아채며 정체를 드러낸다.
전혀 예상 못 했던 트리가 우리 마자도 궁금해할 이유를 대신해 물어주니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로리가 말한다.
‘네가 그와 계속 자기 때문에?’
그레고리를 떠올리며 황당해 하는 트리에게 로리는 더욱더 커다란 분노를 담아 말한다.
‘난 네가 멍청해서 싫어!’
결국 로리가 트리를 죽인 이유는 똑똑한 자신을 두고 멍청한 트리를 찾는 그레고리에게 화가 났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하지만 이 글을 읽은 당신이라면 잘 알 것이다. 그레고리가 트리를 찾는 이유를.
두 사람의 치열한 격투가 끝나고 지친 트리가 말한다.
‘로리가 내 컵케이크를 먹었어.’
어찌 보면 황당하고 어찌 보면 상투적인 이유로 트리를 죽이려고 한 로리, 결국 그렇게나 열심히 먹이려고 한 컵케이크를 본인이 먹게 됨으로써 그녀에게 ‘내일’을 돌려주게 된다.
비로소 오늘을 끝낸 트리에게 커트는 팔찌를 건넨다. 그리고 생일을 끝낸 트리의 곁으로 의미심장하게 그녀의 눈에 들어왔던 한마디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어쩌면 ‘오늘은 네 남은 인생의 첫날’이라는 선물을 ‘커트와의 사랑과 Dad의 부정과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라는 상자에 넣어 '죽음‘이란 리본 장식을 달아 트리에게 보내준 것은 아닐까.
먼저 떠나버린 엄마가 남긴 아주아주 특별한 선물이 조금 무섭고 진심 짜증 나고 많이 아팠을지라도 제대로 살아볼 ‘삶’을 얻었으니 앞으로의 ‘내일’은 행복하기만 할 것 같다.
끝으로 ‘知彼知己 百戰百勝’이라는 말이 사무칠 로리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게 되는 다니엘의 대사로 마무리를 지어볼까 한다.
‘어쨌든 로리가 머릴 잘 못 썼죠. 컵케이크에 독을 넣다니! 우린 카파스예요. 컵케이크를 안 먹는다고요.’
흠,로리가 트리에게 던졌던 ‘멍청하고 천박한 년’이라는 대사는 그녀 자신에게 해야 할 말이 아니었을까.
댓글 영역